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 이용자의 2분짜리 영상이 하루 만에 60만 조회를 넘겼다. 파이널 판타지 6의 한 장면, 티나(영어판 테라)가 마을과 던전을 3인칭 시점으로 달리고 매슈(영어판 사빈)가 유령열차를 등 뒤로 내던지는 그 장면이 최신 그래픽으로 되살아난 모습이었다. 단 하나, 사람 손이 아니라 생성 AI가 만든 영상이라는 점만 빼면 팬들이 30년 넘게 기다려 온 바로 그 그림이었다.
X 이용자 desusanJP가 5월 16일 올린 이 영상은 원작의 테마곡을 배경음으로 깔고 시작한다. 게시 직후 빠르게 퍼졌고, 시리즈를 만든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직접 반응하면서 단순한 팬 영상은 업계 논쟁으로 번졌다.
거장의 한마디가 부른 역풍
사카구치는 영상을 보고 "이게 뭐야!? 꽤 멋진데?"라고 적었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가 내놓은 짧은 감탄은 곧장 거센 반발을 불렀다. 영상을 뜯어보면 눈 내리던 도입부가 갑자기 물로 바뀌고, 인물의 얼굴이 컴퓨터 그래픽과 어색한 실사 사이를 오간다. 팬들은 이 영상을 정교한 연출 없이 찍어낸 "AI 슬롭"으로 규정했고, 그런 결과물을 다른 사람도 아닌 창시자가 추켜세운 데 실망을 드러냈다.
사가 시리즈를 만든 카와즈 아키토시는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그는 사카구치를 향해 "그 한 줄에서 멈췄어야 했다"고 적었다. 다만 카와즈도 파이널 판타지 6이 풀 3D 리메이크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데는 동의했다. 문제는 AI라는 수단이었지, 리메이크라는 목표가 아니었다.
사카구치는 뒤이어 해명을 내놨다. AI 트레일러의 기술력을 칭찬한 게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 6 리메이크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감명받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스트워커에서 디렉팅한 엑스박스 360 RPG 로스트 오디세이의 AI 생성 아트까지 추가로 공유했다. 커뮤니티는 둘로 갈렸다. 창시자가 AI 콘텐츠를 칭찬하는 건 잘못된 신호라는 쪽과, 팬 영상을 흥미롭다고 한 것이지 AI를 제작 도구로 지지한 건 아니라는 쪽이 맞섰다.
진짜 주인공은 AI가 아니라 스퀘어에닉스의 침묵
이 소동에서 가장 말이 없는 쪽은 정작 스퀘어에닉스다. AI냐 아니냐를 두고 거장들과 팬이 격론을 벌이는 동안, 영상의 원래 주인이어야 할 회사는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이다. 가짜 트레일러 한 편에 60만 명이 몰리고 시리즈 창시자가 반응한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가 없기 때문이다.

파이널 판타지 7은 정반대 대접을 받았다. 2020년 리메이크를 시작으로 2024년 리버스까지, 원작 한 편을 풀 3D 3부작으로 다시 짓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반면 1994년 슈퍼 패미컴으로 나온 파이널 판타지 6이 받은 건 픽셀 리마스터가 전부다. 원작의 도트 그래픽을 다듬어 현행 기기에서 돌아가게 만든 이식판으로, 파이널 판타지 1부터 6까지 묶여 나왔다. 정성 들인 복원이지만, 7이 받은 풀 3D 재구축과는 격이 다르다.
30년을 기다린 갈증
회사가 6을 방치한 건 아니다. 다만 규모가 발목을 잡는다. 파이널 판타지 6 원작 디렉터 키타세 요시노리는 6을 7처럼 풀 3D로 다시 만들면 등장인물과 콘텐츠 분량 탓에 완성까지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설령 그런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더라도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 3부작이 끝난 뒤에야 가능하다는 전망이 따라붙는다.
대안도 거론된다. 드래곤 퀘스트 3 HD-2D 리메이크를 맡았던 프로듀서 하야사카 마사아키는 파이널 판타지 6을 HD-2D 양식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트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현대 기술로 입체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풀 3D보다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어느 쪽도 공식 발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30년 넘게 팬들은 "언젠가"라는 말만 들어 온 셈이다.
AI 슬롭 논란은 그래서 표면이다. 영상의 품질이 거칠다는 비판도, 거장이 경솔했다는 지적도 모두 맞지만, 그보다 먼저 짚어야 할 건 어설픈 가짜조차 화제가 될 만큼 진짜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사실이다. AI가 만든 2분짜리 영상이 시리즈 창시자의 손끝을 멈춰 세웠다면, 그 신호를 가장 무겁게 받아야 할 쪽은 비판하는 팬도, 해명하는 거장도 아니라 30년째 답을 미뤄 온 스퀘어에닉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