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6일 오전 11시. 브뤼셀 유럽 의회 소회의실에 남자 한 명이 섰다. 유튜브 채널 Accursed Farms를 운영하는 게임 보존 활동가 로스 스콧이다. 그의 오른쪽엔 공동 운영자 모리츠 카츠너와 자문을 맡은 다니엘 온드루슈카가 앉았다. 의원석을 제외한 청중은 카메라 몇 대. 그러나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모인 이름은 129만 4188개였다. 유럽 연합 시민 발의 절차에서 유효 서명으로 최종 확인된 숫자다.
청문회의 공식 명칭은 '비디오 게임 파괴 중단(Stop Destroying Videogames)' 시민 발의 공개 청문회. 역내 시장·소비자 보호 위원회(IMCO)와 법률 위원회(JURI), 청원 위원회(PETI) 세 곳이 공동 주관했다. 의장석에는 IMCO 위원장 안나 카바치니가, 옆자리엔 PETI 부의장 닐스 우샤코프스가 앉았다. 약 90분의 논의가 끝난 뒤 의회 기록에 남은 문장은 이례적이었다.
브뤼셀까지 올라온 2년
출발점은 2024년 3월 31일이다. 유비소프트가 자사 레이싱 게임 더 크루(The Crew)의 서버를 끊었다. 출시 10년차였고, 오프라인 모드는 애초에 없었다. 서버가 내려가자 게임도 내려갔다. 며칠 뒤 유비소프트는 구매자 계정의 라이선스까지 회수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6만 원 넘게 결제한 사람들의 라이브러리에서 더 크루가 사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콧이 꾸린 운동이 '스톱 킬링 게임즈(Stop Killing Games)'다. 요구는 간단하다. 온라인 접속이 필수인 게임이 서버 종료와 동시에 실행 자체가 막히는 구조를 법으로 손봐달라는 것. 2024년 4월에 출범한 캠페인은 지난해 7월 말까지 서명을 받았다. 접수 총 144만 8270건, 그중 유효 확인 129만 4188건. 유럽 시민 발의의 최소 기준이 100만 건이다.
청문회에서 오간 말들
스콧의 발언은 비용 반박에 집중됐다. 업계가 반복해 내놓는 논리, 즉 서버 유지와 오프라인 모드 구현이 과도한 부담이라는 주장에 대해 실제 수치를 들이밀었다. 게임 기획 초기 단계부터 서비스 종료 이후의 오프라인 전환을 설계에 포함시킬 경우 추가 부담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이미 출시된 게임을 사후에 고치는 비용과, 설계 단계에서 엔드오브라이프를 미리 넣는 비용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스콧이 든 사례는 두 개였다. 일렉트로닉 아츠가 2019년 출시한 앤섬(Anthem)이 하나, 소니가 2024년 8월 출시 2주 만에 철수한 콘코드(Concord)가 다른 하나. 한쪽은 대형 서드파티, 다른 한쪽은 플랫폼 보유사가 직접 만든 온라인 전용 타이틀이다. 앤섬은 서비스 운영이 사실상 중단됐고, 콘코드는 환불 처리로 마감됐다. 환불과 별개로 두 게임을 다시 플레이할 경로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의원들의 반응이 이날의 변수였다. 한 의원은 "디지털 콘텐츠 구매가 실제 소유인지, 단순 이용권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원은 "차를 샀는데 몇 년 뒤 제조사가 시동을 못 걸게 만드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꺼냈다. 우샤코프스 부의장과 EU 집행위 디렉터 주세페 아바몬테는 퍼블리셔가 판매된 게임을 "파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현행 저작권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카바치니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은 짧았다. "모든 정치 그룹이 지지한다."
구매라는 단어의 무게
논의의 실제 쟁점은 한 줄로 정리된다. 스토어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구매인가, 구독인가. 현행 EU 소비자 보호 규정은 이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디지털 스토어 약관은 사용자에게 "비독점적이고 제한적이며 취소 가능한 라이선스"를 부여한다고 적는다. 그러나 화면의 버튼에는 Buy라고 쓰여 있고, 결제가 끝나면 "구매 완료"라는 안내가 뜬다.
이 괴리는 체감으로도 분명하다. 2014년 더 크루를 정가에 결제한 사람은 자신이 게임을 산다고 믿었을 것이다. 10년 뒤 라이브러리에서 그 게임이 지워졌을 때, 그게 사실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유비소프트는 이를 "라이선스 만료"로 설명했지만, 구매 시점에 해당 약관을 끝까지 읽고 동의 체크를 한 기억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