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동접 3만, 메타크리틱 83점, 대한민국 게임대상 최우수상.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 받아든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그 개발팀이 출시 1년 만에 사실상 해체됐다.
넥슨 자회사 네오플은 4월 8일 사내 설명회를 열고 카잔 개발 조직의 전환배치를 공지했다. 약 100명에 달하던 개발진 대다수가 사내 R팀으로 이동한다. R팀은 네오플의 전환배치 전담 조직이다. 회사 측은 "인력 효율화 차원"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업계에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숫자는 괜찮았는데
카잔은 2025년 3월 28일 PC, PS5, Xbox Series X|S로 동시 출시됐다. 넥슨의 간판 IP인 던전앤파이터 세계관을 차용한 하드코어 액션 RPG로, 스탠다드 에디션 기준 6만4800원이었다.
출시 직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스팀 글로벌 매출 4위에 올랐고, 이틀째 동접은 3만258명을 찍었다. 메타크리틱 PC 기준 83점. 연말에는 대한민국 게임대상 최우수상과 기술창작상 그래픽 부문을 수상했다. IGN은 '2025년 최고의 소울라이크' 중 하나로 꼽았고 GameSpot도 올해의 액션 타이틀에 이름을 올렸다.
평단의 호평, 국내 게임대상 최우수상, 글로벌 매출 상위권 진입. 겉으로 보면 성공의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그런데 왜
네오플의 공식 입장은 "패키지 게임은 어느 정도의 목표를 완수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해석하면, 더 이상 투입할 자원 대비 기대 수익이 남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다. 공식 판매량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스팀 동접 3만은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지만, 넥슨이 카잔에 건 기대치는 그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마리는 중국에 있다. 카잔의 중국 출시는 라이선스 승인 지연으로 무기한 미뤄진 상태다. 넥슨에게 중국 시장은 던전앤파이터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핵심 거점이다. 카잔 역시 중국 판매를 전제로 수익 구조를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손익분기점 자체가 달라진다.
DLC나 추가 플랫폼 이식 계획도 확정된 것이 없다. 네오플은 "내부에서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100명 규모의 팀을 유지하면서 미확정 로드맵을 기다리는 것보다, 인력을 재배치하는 쪽이 경영 판단으로는 합리적이다. 냉정하지만 틀린 판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같은 주, 다른 파산
카잔 전환배치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인 4월 9일, 모바일 게임사 클로버게임즈가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2018년 설립된 이 회사는 로드 오브 히어로즈로 가입자 400만, 누적 매출 480억원(2020년 12월 기준)을 기록하며 중소 개발사 성공 사례로 꼽혔다. 2023년에는 15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까지 유치했다.
파산의 직접적 원인은 올해 2월 출시한 신작 헤븐헬즈의 흥행 실패다. 출시 일주일 만에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글로벌 버전으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윤성국 대표는 최근 3년간 개인 사재 30억원 이상을 투입하며 회사를 지탱해 왔다고 밝혔다.
4월 6일 인앱 결제를 선제 차단한 점은 이례적이다. 파산 직전까지 과금을 받는 업체가 적지 않은 업계 관행을 생각하면, 유저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로 읽힌다.
구조가 말하는 것
카잔과 클로버게임즈는 규모도, 장르도, 실패의 양상도 다르다. 하나는 대기업 자회사의 AAA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트업의 모바일 게임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좋은 게임"만으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시장에서 부딪혔다는 것이다.
카잔은 비평적 성공과 상업적 기대치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메타크리틱 83점짜리 게임의 개발팀이 1년 만에 해체 수순에 들어가는 건, 패키지 게임 시장의 손익 구조가 그만큼 빡빡하다는 방증이다. 클로버게임즈는 단 한 번의 신작 실패가 8년차 회사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시리즈B까지 받은 회사가 신작 하나로 문을 닫게 됐다.
관전 포인트는 넥슨의 다음 수다. 카잔 이후에도 네오플이 AAA 패키지 라인업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던전앤파이터 라이브 서비스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 5월 예정인 넥슨의 1분기 실적 발표가 그 방향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