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마타의 스케치북 데모가 공개된 지 한 달이 넘었다. 200만 다운로드를 넘긴 데모를 이제서야 직접 돌려본 건, 솔직히 캡콤의 완전 신규 IP라는 점이 오히려 망설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이오하자드도 몬스터헌터도 아닌 캡콤이라니. 기대보다 의심이 앞섰다.
데모 클리어까지 17분 26초. 의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한 사람이 둘을 움직이는 전투
프래그마타의 전투는 두 캐릭터의 협동으로 굴러간다. 대응팀 대원인 휴가 전투를 담당하고, 안드로이드 소녀 다이애나가 해킹으로 적의 빈틈을 만든다. 게임 안에서는 둘이 함께 싸우지만,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건 나 혼자다.

적을 조준하는 동안 해킹 그리드가 화면 한켠에 뜬다. 노드를 배치해서 적의 방어를 무력화하고, 그 사이에 사격으로 대미지를 넣는 구조다. 처음에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인지 과부하에 가까웠다. 적에게 집중하면 해킹 타이밍을 놓치고, 해킹에 몰두하면 적의 공격에 맞는다.
그런데 한 3~4번 맞고 나니 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와 해킹이 별개의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으로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그 전환점을 넘기면 전투의 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다이애나는 전투 중에도 계속 상황을 전달해준다. 적의 상태 변화, 해킹 성공 여부를 음성으로 알려주는데, 이게 HUD를 확인하는 것보다 직관적이다. 데모에서는 한국어 자막만 지원되고 음성은 영어/일본어뿐이지만, 정식판에서는 캡콤 AAA 타이틀 최초로 한국어 더빙이 들어간다.
타격감, 무게가 실린다
그립 건의 타격감이 예상 이상이었다. RE 엔진 기반이라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 느꼈던 사격의 무게감이 기저에 깔려 있고, 거기에 SF 무기 특유의 이펙트와 피격 리액션이 더해졌다. 적 로봇에 명중하면 프레임이 미세하게 걸리면서 임팩트가 전달된다. 데모치고 이 정도 피드백이면 전투만으로도 손맛을 기대할 수 있다.
해킹은 전투 외에도 환경 퍼즐에 쓰인다. 회로를 연결해서 전력을 복구하거나, 잠긴 경로를 여는 식이다. 전투 구간과 퍼즐 구간의 전환이 빈번한데, 데모 범위 내에서는 템포가 끊기지 않았다. 다만 정식판에서 이 전환이 수십 시간 플레이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RE 엔진, SF에서도 통한다
캡콤이 다이애나의 머리카락 애니메이션을 위해 RE 엔진을 직접 개량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데모에서 확인해보니 과장이 아니었다. 컷신에서 다이애나의 금발이 움직이는 걸 보면, 기존 RE 엔진 타이틀에서는 보지 못했던 수준의 디테일이 느껴진다.

달 기지 내부의 금속 질감, 표면에 반사되는 조명, 우주 공간의 스케일. 바이오하자드와 몬스터헌터로 다져온 렌더링 기술이 SF 배경에서도 설득력 있게 작동한다. 특히 보스전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대형 메카와 맞서는 장면은 데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비주얼이었다.

17분이 남긴 것
데모를 클리어하면 다이애나가 직접 그린 그림을 들어 보인다.

17분은 짧다. 하지만 캡콤이 이 데모에 담으려 한 것은 분명하게 전달됐다. 전투와 해킹의 동시 조작이라는 핵심 루프, RE 엔진의 비주얼, 그리고 휴와 다이애나 사이의 관계. 전투가 끝난 뒤 휴가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며 "같이 해냈을 땐,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 이 게임이 액션 이전에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걸 보여줬다.
정식판에서는 그립 건 외에도 쇼크웨이브 건, 차지 피어서, 스테이시스 넷 등 더 다양한 무기가 추가되고, 다이애나의 해킹도 상위 노드로 확장된다. 데모에서 경험한 "전투+해킹" 루프가 무기와 노드의 조합으로 얼마나 깊어질 수 있을지가 정식판의 관건이 될 것이다.
캡콤 AAA 최초의 한국어 더빙, RE 엔진을 개량해서까지 구현한 캐릭터 표현, 200만 데모 다운로드가 증명한 관심. 4월 17일 정식 출시까지 한 달 남짓. 이 데모는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해냈다
정식판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





